호흡한다.
의료진이 처음 개조 수술을 할 때부터 늘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행동이었다. 셋을 세며 공기를 들이키고 멈춘 뒤, 셋을 세며 숨을 내뱉는 것을 반복하는 것.
그 일련의 행동을 기억한다. 목과 가슴, 팔에 느껴지는 고통을 기억한다. 적어도 지금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 역시 그 행동을 지속하는 동안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숫자를 세며 호흡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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쉔은 엎드린 채 의식을 되찾았다. 비상등이 주변 벽을 붉게 비추다 다시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방금 전 폭발로 인해 쉔이 부딪힌 격벽은 움푹 패인 상태였으며, 평소에는 눈과 귀 역할을 하던 헬멧 역시 손상된 것이 분명했다.
호흡한다. 상황을 인지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모든 조각들이 천천히 하나로 맞춰졌다. 쉔은 다른 타이탄 분대원보다 먼저 제국 퀘이사 폭격형급 캐리어, 엑시전트에 탑승해 정기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여느때처럼 쉔은 조리실에서 아침식사를 한 뒤 돌아오던 참이었다. 복도를 지나면서 쉔은 신나게 잡담 중이던 두 명의 신참 타이 파일럿을 지나쳤었다. 이들은 처음에 쉔이 다가오자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쉔이 귀가 잘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지 조용히 떠들기 시작했다.
쉔이 마지막으로 기억한 것은 미사일 접근 경보였다.
정신이 들었을 때, 아까까지 떠들던 신입 파일럿 두 명은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린 체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놀라운 광경은 아니었다. 방금 전 충격은 평범한 사람이 뇌진탕을 일으켜 즉사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쉔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부는 아니다. 적어도 그 정도까지 개조하지는 않았다. 첫 교전에서 살아남은 타이 파일럿은 아주 극소수다. 쉔은 그 모든 전장에서 살아남았다. 수많은 대가를 치르며 얻은 것이다.
쉔은 주저앉아 한 번 부러진 적이 있던 목에 연결된 사이버네틱 서보가 다시 작동하는 것을 감지하며 헬멧 내부의 통신 채널 버튼을 눌렀다. 쉔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쉔 역시 훈련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는 주의력을 흐트러트릴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도 늙었군.” 쉔은 자조하듯 중얼거렸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헬멧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소리와 함께 쉔 앞에 세상이 다가왔다. 경보음이 우렁차게 울려퍼졌다. 강철 지지대가 끼익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쉔은 셋을 세고 멈추는 익숙한 행동을 반복하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호흡을 내쉬며 타이탄 분대 전용 채널로 전환하자, 우렁차고 창의적인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진창에 코를 박고 양잿물을 들이킬… 고철… 자식아… 좀 움직여~!”
“본레그.” 쉔이 대답했다.
성급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는, “쉔? 멀쩡했구나... 아니지, 당연히 그렇겠지. 대체 무슨 일이야?”
“미사일 공격이야.”
이를 가는 소리가 헬멧을 타고 들려왔다. “여기에서? 이 성계는 안전한 곳이었을 텐데!”
“나도 그렇게 들었다.”
“당장 브릿지 쪽으로 가야 해. 근처에 있긴 한데, 중앙 출입구 쪽이 막혀 버렸어.” 묵직한 전투화가 쿵쿵거리며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쉔이 일어나 대답하려던 순간, 갑판을 타고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쉔의 사이버네틱 임플란트가 그 절묘한 떨림을 감지하면서, 쉔은 경험상 곧 어떤 일이 닥칠 것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럴 시간 없어.” 쉔이 입을 열었다. “함선은 더 못 버텨.”
"뭐라고?"
“함선은 더 못 버텨. 당장 벗어나야 해.”
본레그도 쉔의 본능 앞에서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다. “알았어, 하지만 정황상 우현 격납고는 완전히 날아가버린 것 같아. 우리 타이 전투기는 홀라당 타 버렸다고.”
“그럼 리퍼 뿐이군. 좌현 격납고 쪽에 한 기가 있는 걸 봤다.”
삑삑 소리가 들려왔다. “맞아... 좌현 쪽은 멀쩡한 것 같아. 이 방폭문만 지날 수 있다면...”
“내가 가지.” 쉔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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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전트 내부는 불꽃이 튀는 도관과 저기 회로에서 피어오르는 연기, 그리고 부상자들이 외치는 소리와 장교들이 명령조로 외치는 소리로 가득한 공포의 도가니였다. 쉔은 악몽 속을 헤쳐나가듯 빠르게, 하지만 서두르는 기색 없이 목적지로 나아갔다. 갑판 대피 경보를 울리기 위해 잠깐 동안 멈춘 게 고작이었다. 번쩍이던 붉은 조명이 노란색으로 깜박이며 탈출 용 포드로 향하는 길로 안내하는 대피용 비상등이 복도를 비췄다.
쉔은 이들을 모두 무시했다. 가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앙 출입구 쪽을 막은 방폭문 역시 문제가 있었다. 문을 지탱하는 지지대가 무너져 방폭문을 완전히 틀어막고 있었다. 쉔은 그 반대편에서 우리에 갇힌 넥수마냥 울부짖는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본레그?”
“여기야!”
쉔은 어깨를 지지대 쪽에 붙여 무게를 가늠한 다음 가볍게 밀어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슴 속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지고 있었다.
“수동 해제는?” 쉔이 물었다.
“이미 당겼어. 쥐뿔도 쓸모가 없었지만.”
방폭문을 살펴본 쉔은 몸을 낮춰 가장자리에 달린 손잡이를 쥐었다. “그럼 동시에 올리지. 셋에 간다.”
“좋아. 하나, 둘...”
본레그의 ‘셋’에 맞춰 쉔이 몸을 일으켰다. 마찰음과 함께 망가진 문이 열리는 동안 가슴 속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었지만, 쉔은 애써 이를 무시하며 6피트 반 정도의 근육과 사이버테닉스, 그리고 튼튼한 하체 전부를 문을 들어올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자 타이 파일럿 복장을 입은 누군가가 문틈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몸이 전부 빠져나오자 쉔은 손잡이를 놓았다. 우르릉 소리를 내며 문은 다시 닫혔다.
“아주 잘 했어.” 하비나 본레그가 몸을 일으켜 먼지를 털어내며 대답했다. 쉔과 비교하면 키는 절반 정도에 체형은 열 기폭장치마냥 작았고, 절반을 밀어버린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는 큰 흉터가 나 있었다. “이제...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본레그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쉔은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3인치 정도의 날카로운 듀라스틸 파편이 쇄골 아래쪽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폭발 당시 파편이 튀어 몸을 관통한 게 분명했다. 그제야 쉔은 가슴에 느껴졌던 긴장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느끼지 못한 고통의 그림자였던 것이다.
“신경쓰지 마.” 쉔이 대답했다. “탈출을 우선해.”
본레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파편을 바라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앞장서.”
격납고는 온전했지만 내부는 엉망이었다. 미사일 타격을 받아 격납고에 적재되어 있던 타이 전투기가 연기와 함께 추락해 있었다. 특공대 정도는 태울 수 있을만큼 충분히 크고 넓적한 타이 리퍼는 정비를 위해 갑판 한 구석에 비치되어 있었다. 추락한 타이 파이터의 날개 일부가 꽃혀 있었지만, 리퍼는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리퍼 쪽으로 달려가자, 둘은 갑판 사이로 또 다른 진동을 느낄 수 있었다. 전보다 기분나쁜 진동이었다. 생존자를 찾을 여유같은 건 없었다.
“본레그, 서둘러,” 쉔이 본레그에게 지시했다.
본레그는 반쯤 무너진 선반 위에 있는 헬멧을 집어들었다. “도울게. 얼마나 더 나빠질 것 같아?”
“재앙급이라 해두지.” 쉔은 리퍼의 연료 공급선을 분리한 뒤 경사로를 내렸다. 본레그가 잽싸게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쉔은 본레그를 따라 조종석에 앉은 뒤 벨트를 매고 이륙 준비를 서둘렀다. 본레그 역시 부조종석에 앉아 빠르게 벨트를 맸다. “체크.”
“기다려.” 쉔이 경고했다.
쉔은 타이 봄버의 불규칙적인 탑재량에 익숙했다. 타이 리퍼는 신속한 병력 배치를 위해 제작된 것이었다. 터치 한 번으로 이륙한 타이 리퍼는 박혀있는 타이 전투기의 날개 부분을 바닥에 긁어내듯 떼어낸 뒤 격납고를 보호하는 자기 보호막을 뚫고 바깥으로 날아올랐다.
보호막을 거스르듯 날아오는 잔해 구름을 뚫고, 타이 리퍼는 안전한 거리까지 날아갔다. 거의 동시에, 미사일 공격을 받은 엑시전트는 우현 쪽에서 전기 불꽃을 일으키며 머나먼 우주의 먼지로 변해갔다. 대피용 타이 전투기와 탈출 포드 몇 기에서 나오는 빛이 엑시전트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폰레그가 자리 앞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장갑을 낀 손이 팔걸이를 꽉 쥐고 있었다. “저걸 봐.”
쉔은 묵묵히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누바르 성계는 안전한 곳이라며! 엔도 사건 이후 정보부는 뭘 하고 있던 거지? 진비들이나 치며 놀고 있었던 거야? 테릴 함장이 이 소식을 들었다면, 분명...”
쿠우웅...
눈부신 청색 섬광이 두 사람 앞에 펼쳐졌다. 본레그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쉔은 헬멧의 시야를 보정했다. 빛이 걷히자, 엑시전트는 세 조각으로 나뉘어 우주를 떠돌고 있었다. 선체 일부가 불에 탄 채로 떠내려갔다.
“리액터가 과부하 상태였군.” 쉔이 입을 열었다.
“저 캐리어에는 200명이 넘는 인원이 타고 있었어.” 본레그가 대답했다. 창백한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본레그는 즉시 콘솔을 누르며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쉔은 능숙하게 리퍼를 다루며 엑시전트가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엔도 사건 이후, 쉔은 많은 함선이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기야.” 콘솔을 확인하던 본레그가 입을 열며, 누바 성계 지도를 열었다. 그 지도에는 두 번째 위성에서 시작된 어떤 궤적이 그려져 있었다. “이 미사일 말인데, 궤도를 선회 중이던 방어 기지에서 온 것 같아. 제국 쪽 기지야.”
쉔이 몸을 기울였다. “우리 기지라고?”
“기록상으로는 그래. 기억이 맞다면 우리가 두 달 전에 반란군, 아니 지금은 ‘신 공화국’이랬던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아무튼 저들에게서 빼앗은 걸로 되어 있어.”
“흐음.”
“그렇지?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무슨 근거로 아군 기지가 엑시전트를 공격하겠어?”
본레그는 별들을 노려보았다. “우리가 이번 일을 처리해야 돼. 기지로 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야겠어. 반군의 파괴공작이나 밀항으로 인한 사고일 수도 있잖아. 아니면...”
“저기 생존자가 있어.” 쉔이 잔해만 남은 함선과 그 너머로 움직이는 탈출 포드의 불빛을 턱으로 가리켰다.
“만약 저 기지가 다시 미사일을 발사하면 저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본레그 역시 궁금하다는 눈치였다. “다른 타이탄 분대가 와도 마찬가지겠지. 지금 이 상황에 뛰어들었다간 또 다시 일제사격의 먹잇감이 될 게 뻔해. 바르-샤 때보다 더 많은 인원을 잃게 될 거야.” 본레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 거야.”
“우리는 특공대가 아니야.”
본레그가 쉔을 향해 분노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우리 형제들도 이런 식으로 공격을 받고 전부 죽었어.” 본레그가 으르렁거렸다. “반군의 어뢰 한 발로, 우리 가족 절반이 그렇게 죽었다고!” 본레그가 그 말과 함께 손가락을 튕겼다. “임무 절차는 엿이나 먹으라고 해. 그런 식으로 파일럿을 하나 더 잃느니 직접 가서 그 기지를 파헤치는 게 나아!” 본레그는 그렇게 외치고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 동료 맞긴 한 거야?”
쉔은 본레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쉔 역시 본레그가 전투에서 주체하지 못하는 분노를 쏟아붓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 보였다. “알았다.”
“뭘 ‘알았다’는 거야?”
“알았다. 같이 가지.”
본레그가 결심을 한 듯 자세를 고쳐잡았다. “뭐 좋아.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본레그의 시선이 쉔의 가슴팍에 꽃힌 듀라스틸 조각으로 향했다. “그 전에 저것부터 좀 어떻게 해 봐.”
쉔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의료선이나 정비사가 필요한 사안이야.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어.”
본레그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벨트를 풀고 리퍼 안쪽의 부대 정비칸으로 가 의료 도구를 들고 돌아왔다. “최소한 아프다고 소리치면서 항생제라도 좀 먹으란 말야.”
둘은 자리를 바꿔 앉았다. 본레그가 진로를 잡는 동안, 쉔은 하던 대로 의료 도구에 있는 자극제 세 방을 주입한 뒤 기분나쁘게 흘러내리는 혈액을 닦아냈다. 본레그는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그렇게 행동하니 마치 아픈 데가 없는 사람 같네,” 본레그가 대꾸했다.
“그렇지도 않아.”
“좀 알려줘. 어떻게 하면 고통을 없앨 수 있는 거야?”
“연습이지.” 쉔은 빈 자극제 주사기를 아무렇게나 던진 뒤 부조종석 조종장치를 다루기 시작했다. 유기적이건, 무기적이건, 쉔은 자신의 시스템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본레그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우리가 지닌 공통점이 바로 그거야. 생각하지 않고 싸우는 거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이유는 그래서일걸.”
쉔은 리퍼의 속도와 진로를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이동하면서, 본레그는 입을 열었다. “내 동생 헤드리안은... 반란군 녀석들의 어뢰로 완전히 죽진 않았어. 동생은 자기가 만들던 것을 완성하고 떠났으니까...” 그 손은 연습한 대로 조종 장치 위를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그 시선은 조종 장치 너머에 있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공포를 향하고 있었다. “현명한 방법은 아니었지. 엑시전트에 탑승했던 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잃었고.”
쉔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넌 느낄 수 없어.”
본레그가 대답할 때까지 둘은 침묵을 유지한 채 계속 나아갔다. “만약, 만약에 말이야. 네가 감성적인 녀석이었다면 과부하가 되기 전까지 많은 걸 해 보려고 발버둥쳤을 거야. 그런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계속 나아가길 바란다면 뭐든 찾을 수 있겠지. 단순한 목표라 해도 말이야. 뭐가 되었건, 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거야. 모든 건 서로 맞부딪히여 소음을 내는 법이거든. 생존을 위해서라도.”
본레그가 어깨 너머로 시선을 돌여 쉔을 보았다. “방금 한 말은 잘 써먹도록 해...”
“그래야 할 필요가 있나?”
“그렇네.” 본레그가 몸을 일으켰다. “이 문제를 해결하자.”
쉔은 조용히 동의했다.
* * *
두 사람이 탄 타이 리퍼는 먼지로 뒤덮힌 초승달 모양의 위성에 근접한 회색 위성기지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동시에 경보음이 들렸다. 그 경보는 두 사람에게 어떤 위협이 다가오고 있는지를 즉각 알려주고 있었다.
“기지 쪽에서 미사일을 조준했군.” 쉔이 입을 열었다. 쉔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회피 동작 준비를 했다.
본레그는 리퍼의 무기 시스템을 훑어본 뒤 인상을 찌푸렸다. “공격으로 인해 정비가 도중에 중단된 것 같아. 이 고철 덩어리는 대응 공격 수단이 하나도 없어. 쓸 수 있는 건 레이저 캐논 뿐이야.”
“할 수 있겠나?”
본레그가 센서를 체크했다. 본레그가 사수의 소질을 지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쉔은 대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경보음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확실한 경고를 알리고 있었다. 미사일이 확실하게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물론이지.” 본레그가 고개를 들었다. “할 수 있어. 쏠 기회만 준다면 말이야. 격하게 날아서 조준을 분산시켜야 해. 우현으로 비스듬히 날아야겠어.”
“언제든 말만 해.”
쉔은 항로를 기지 쪽으로 고정한 후 속도를 올렸다. 헬멧에 장착된 시스템은 이미 희미하게 날아오는 하얀 궤적과 함께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파악한 뒤였다. 본레그의 시선은 센서에 고정되어 있었고, 엄지손가락은 방아쇠 위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50킬로 이내까지 접근하자, 미사일이 가시거리 내에 들어왔다. 어떤 탄두를 싣고 있건 저 미사일이라면 이 함선의 선체 정도는 가볍게 꿰뚫을 수 있었다.
30킬로.
맞기라도 하는 날에는 이 타이 전투기는 그대로 우주의 먼지가 될 것이다. 아무리 쉔이라도 이 상황에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15킬로.
“지금이야!”
쉔이 타이 리퍼를 우현으로 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군용 캐리어는 폭격기와 달리 급선회가 힘든 구조로 설계되었다. 쉔은 선회력을 버티지 못하는 이 함선 상부에서 나는 비명소리를 들었지만, 그는 타이 리퍼를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이 소리에 ‘안 된다’고 대답하듯 기체를 그대로 유지했다. 몇 초 뒤, 레이저 캐논에서 발사된 녹색 레이저가 미사일을 산산조각냈다.
“두 번째 미사일 발사를 준비 중이야.” 본레그가 보고했다.
쉔은 미사일 궤적을 판독했다. 기지 격납고가 앞쪽에서 희미한 푸른빛을 내며 직사각형으로 빛나고 있었다.
“쉔?”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에 격납고에 갈 수 있겠군. 출력을 최대로 올려.”
본레그는 엔진에 동력을 공급했다. 쉔은 리퍼 속도를 최대로 설정한 뒤 부스트 버튼을 눌렀다. 좌석에 몸이 파고들만큼 강렬한 가속도가 덮쳐왔다. 선체가 덜컹거리며 흔들리더니, 기지 격납고를 막고 있는 푸른색 보호막이 순식간에 눈앞까지 다가왔다.
미사일 조준 경보가 최대 수위를 알리고 있었다.
션은 보호막을 뚫기 몇 초 직전에 전력을 차단했다. 격납고로 돌진한 타이 리퍼는 귀를 찢는 마찰음과 함께 한쪽에 쌓아둔 상자를 흩뿌리며 이곳저곳을 미끄러진 후에야 겨우 작동을 멈췄다.
본레그가 긴 숨을 내쉬었다. “정말 해냈네.” 본레그의 손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며 쉔이 뻗은 손바닥을 가볍게 때렸다. “멋진 착륙이었어.”
“고마워. 이제 어쩌지?”
본레그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에게 총을 겨눈 놈을 찾아 복수해야지.” 본레그는 리퍼 안쪽의 탄약고로 들어가 블래스터 두 자루를 들고 나왔다. “작은 기지야. 아무리 많아봐야 10명 남짓일 걸.”
쉔은 블래스터를 받아 허리춤에 넣었다. “그래도 우리보다 수가 많아. 정신 바짝 차리는 게 좋을 거야.”
두 사람은 화물칸 경사를 따라 리퍼에서 내렸다. 격납고는 리퍼가 망가뜨린 상자들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갑판 아래에는 깊은 홈이 패여 있었다. 격납고 안은 냉각 엔진이 움직이는 소리를 빼고 쥐죽은듯 고요했다.
격납고 입구 엘리베이터 쪽으로 다가간 쉔은 손가락을 튕겨 본레그의 주의를 끈 뒤 불이 켜진 액세스 패널 쪽을 가리켰다. 신호를 확인한 본레그는 엘리베이터 쪽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움직였다.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다.
둘은 출입구를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소리를 내며 멈췄다. 천천히 문이 열렸다.
회색과 흰색이 섞인 제복을 입은 인원 두 명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연기를 내며 격납고에 불시착한 타이 리퍼를 본 뒤 서로 마주보았다. “최소한 센서가 망가진 건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이건 대체...”
순간 본레그가 쏜 블래스터가 왼쪽 인물의 다리를 가격했다. 맞은 상대는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붙잡고 쓰러졌다. 그 광경에 놀란 다른 쪽이 블래스터를 뽑으려 허둥거리는 동안, 그 안면으로 쉔의 묵직한 주먹이 날아들었다. 쉔의 일격을 맞은 상대는 3피트 정도 뒤로 비틀거리다 갑판 위에 쓰러진 채 기절하고 말았다.
본레그는 성큼거리며 사냥감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제국을 끝장내려 생각했다면 말야.” 본레그가 입을 열었다. “뒷처리는 확실하게 하라고.”
“잠깐만요! 으윽... 잠깐만요, 저희는...”
쉔은 기절한 두 번째 인물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쉔이 기대했던 것은 공포로 굳어버린 신 공화국의 특공대였다. 하지만 그 눈 앞에 있었던 멍한 얼굴은 젊고, 올리브색 피부를 지녔으며, 면도를 하기에는 아직 이를 정도로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는 청년이었다.
그런 쉔의 뒤쪽에서 본레그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쉔...?”
“음?”
본레그가 쉔에게 자신의 발밑에서 멍한 얼굴로 쓰러진 젊은이의 어깨에 달린 휘장을 가리켰다. 제국 휘장이었다.
“제국 후보생들이야.” 본레그가 입에 담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을 꺼냈다. “우리 후보생이라.”
쉔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위...” 쉔에게 붙잡힌 자가 새어나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니코바르 소위입니다... 저쪽은 워렌스 소위...”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본레그가 니코바르의 얼굴을 눌렀다. “여기 지휘관은 누구냐? 어째서 아군 캐리어를 격추한 거지?”
“우리는 모르는 일이예요!” 워렌스가 다리를 움켜쥐고 숨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나오면 곤란해.” 본레그가 경고하듯 협박했다.
“컨트롤 타워를...”
그때, 쉔은 니코바르의 멱살을 내린 뒤 엘리베이터 쪽으로 밀어넣었다. “안내해라.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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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명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컨트롤 타워로 향했다. 그곳에는 세 명의 다른 제국 후보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문이 열리면서 절뚝거리며 등장한 워렌스를 보더니, 중앙 콘솔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들어온 본레그를 보고는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누구...” 후보생 중 한 명이 뭔가 물어보려 했지만, 그 목소리는 쉔의 가슴에 박힌 피투성이 듀라스틸을 보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쉔은 본레그가 조작을 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번갈아가며 지켜보았다. 이들의 제복은 매우 엉망이었고,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관리장교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 후보생은 미사일이 발사되기 직전 엑시전트에서 보았던 두 명의 타이 파일럿보다 약간 더 어려 보였다. 방금 전까지 활기차게 잡담을 하다 목숨을 잃은 파일럿들이었다.
중앙 콘솔을 조작하던 본레그가 콘솔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모든 후보생이 일제히 그 행동에 놀랐다. 본레그가 어깨에 무거운 짐이 들린 것처럼 콘솔에 몸을 기댔다. “어처구니가 없군.” 본레그가 쉔 쪽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 머저리들, 점령한 반란군 기지에 배치된 주제에 미사일 조준 시스템 프로토콜조차 수정하지 않았어. 지금 시스템은 사정권 내에 들어오는 제국 소속은 뭐든 요격하도록 설정되어 있어.”
방 곳곳에서 항의가 빗발쳤다.
“시스템이 그렇게 설정되어 있을 줄 몰랐다구요!”
“저희 지휘관께서는 증원을 요청하러 가셨습니다!”
“맞아요!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만...”
“저희도 통신을 보내려고 했어요! 응답도 없었고, 시스템이 망가진 줄로만...”
“우리 잘못이 아닙니다!” 워렌스가 발을 절뚝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제국이 우리를 아카데미에서 차출해 바로 이곳으로 보냈어요! 엔도 사건 이후 되도록 많은 제국 장교가 필요하다고만 했죠! 우리는 최종 시험조차 치르지 못했는데, 저들은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 준비는 끝났고, 제국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만 했죠...”
쉔과 본레그의 시선이 교차했다. 엔도 사건 이후, 제국에 대한 충성은 많은 모순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이들에게 있어 제국은 충성을 다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가끔은 이들이 원하는 제국의 모습에서 동떨어진 부분을 보여주곤 했다.
“죄송합니다.” 니코바르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죄송하다면 다야?” 본레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캐리어 한 척이 박살났다. 충성을 바친 승무원 수백 명이 너희가 저지른 한순간의 실수로 목숨을 잃었지. 그러고도 죄송하다는 소리가 나오나? 제국 제복을 입은 주제에 그런 말을 한다고 모든 게 다 해결될 줄 알았나?”
“하지만 우리는...”
“입 닥치지 못해!” 본레그의 목소리가 방 전체를 뒤흔들었다. “너희가 한 멍청한 짓 덕에 얼마나 많은 가족이 홀로콜을 받아야 하는지 알고는 있나? 그런 식으로 엔도와 바르-샤, 그 다음에는...” 본레그는 그렇게 말하며 블래스터를 뽑아들었다. “망할, 너희 전부를 본보기로 삼아야겠군. 반란군 놈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후보생들이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때, 쉔이 본레그와 후보생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본레그, 심호흡부터 해. 셋을 세면서 말이야.”
본레그의 눈이 쉔의 눈으로 추정되는 곳을 향했다. 쉔은 본레그가 보는 자신의 모습이 먼지가 내려앉고 자주 손질이 필요한 타이 헬멧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런 썩어빠진 녀석들을 두둔하고 나설 참이야?”
“썩어빠졌어도 우리 편이야.” 쉔이 대답했다.
“저놈들이 엑시전트에게 한 짓을 생각해 봐. 그리고 너에게도!”
“하지만 자네 형제를 죽인 건 아니야.” 쉔이 대답했다.
뒤쪽에서 후보생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본레그가 되물었다. “지금 내가 과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
“너도 잘 알잖아.” 쉔이 대답했다. “잘 생각해 봐.”
짜증섞인 호흡이 본레그의 이빨 사이를 드나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저대로 봐주자는 거야?”
“아니.” 쉔이 대답했다. “저들은 죄책감을 짊어지며 살게 될 거다. 매일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쉔은 자신의 가슴을 톡톡 두들겼다. “우리처럼 말이지.”
사납던 본레그의 시선이 누그러졌다. “네가 사리분별있는 말을 할 때마다 정말 짜증나."
블래스터를 든 본레그의 손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는 본레그를 보며 방 안의 분위기도 같이 누그러졌다. 쉔이 그 뒤를 따랐다.
“조준 시스템 프로파일은 삭제해 뒀다.” 본레그가 어깨 너머로 후보생들에게 말을 걸었다. “최소한의 상식을 지닌 녀석을 파견할 테니, 두 번 다시 일을 그르치지 말도록.”
“잠시만요...” 니코바르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당신들은 누구죠? 어느 분대 소속입니까?”
그 질문을 들은 쉔과 본레그의 발걸음이 멈췄다. 잠깐이었지만, 쉔은 후보생들의 시선을 통해 본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흉터투성이에 분노가 가득한 여성과 두려움과 표정을 읽을 수 없는 피투성이의 거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우린 타이탄 분대 소속이다.” 본레그가 대답했다. “너희는 절대 올 수 없는 분대지.”
"하지만 교훈이 될 수는 있을 거다." 쉔의 말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 * *
2시간 뒤, 스타 디스트로이어 오버시어가 나머지 타이탄 분대와 함께 성계에 도착했다. 본레그는 엑시전트에서 탈출한 생존자 수색 임무에 지원했다. 보고 후 분대장 그레이는 쉔의 상태를 확인한 뒤 비번 명령을 내렸다.
오버시어의 의무병장은 쉔이 의무실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쉔? 또 다쳤나요?”
“그렇소, 또 다쳤죠.”
“이리 누우세요. 수술용 드로이드를 준비하죠.” 의무병장은 쉔의 가슴에 꽃힌 듀라스틸 조각을 살펴보았다. “뭐가 되었건 흉갑 시스템도 너무 오래 되었네요. 갑옷을 벗는 것만으로도 몸에 무리가 올 거예요. 이걸 사용해 호흡하세요.”
쉔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처럼...”
“계속 잃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예전’조차 유지할 수 없게 될 거요.” 의무병장은 수술복으로 환복한 뒤, 박타 스프레이 쪽으로 손을 뻗었다. “당신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내버려둘 수 없어요. 방송이 뭐라고 외치건 간에 말이죠. 뭐, 잘 아실 테지만요. 마음 편히 가져요.”
쉔은 침대에 걸터앉아 스프레이를 들이켰다. 함선 뿐만이 아니었다. 기지에 모인 후보생들, 심지어 다른 은하 너머에서도 제국 후보생들이 사라져가는 제국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소집되고 있었다.
“나중을 위해 보급품을 아껴두십시오.” 쉔이 입을 열었다. “이건 치료예요, 정비가 아니죠.”
의무병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도 뉴 오더 쪽은 현재 보유 중인 모든 파일럿을 필요로 한다더군요. 그러니 저도 당신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어요. 이제 누우세요.”
쉔은 자리에 누웠다.
살기 위해 호흡하는 것. 그것만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제국은 배운 것을 원동력으로 성장한다. 분노와 죄악, 그리고 고통이 모든 연료가 된다. 이들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 불이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정화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한 뒤에야 스스로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법. 계속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것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것이요,
그럴 시간마저 없다면 무엇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할지 알아야 할 것이다.
수술용 드로이드가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쉔은 눈을 감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END